이게 무슨 소리냐 하면, 제법 오래 전으로 돌아가야만 이 이야기의 시작점을 찾을 수 있습니다. 저는 동생이 3명이나 되는 4남매의 장녀로 꽤 오래 살아 왔거든요. 그런데 하필이면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고 혼자 있는 걸 사랑하는 성향을 가지고 태어나 버린 게 문제였다고나 할까요... 후후. 어렸을 때야 어쩔 수 없었지만, 18살 때부터 선택권이 생기자마자 학교 기숙사에 살면서 집을 나와 조금 일찌감치 주거 독립을 했습니다. 개인 공간과 물건이 있을 수 없고, 매일같이 동생들이 싸운 뒤 저에게 와서 자기 말이 맞다고 편을 들어달라고 떼를 쓰는 상황은 사춘기 학생에게는 참으로 벅찼거든요...🤦♀️
그렇게 꽤 오랜 시간을 혼자(혹은 친구와) 살았지만, 가족과 함께 3개월 이상 산 적은 없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동생들과 사이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함께 부대끼고 싸우고 웃으며 지냈던 저를 제외한 가족들 간의 사이만큼 끈적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답니다. 함께 살아 온 세월이 짧은 게 사실이니까요. 아무튼, 그럼에도 집을 오래 나와 산 것에 대해서 동생들에게 어쩔 수 없는 부채감을 가지고 있기는 합니다. 이게 바로 K-장녀...?
특히 그 중에서도 바로 아래의 남동생에게는, 아래로 동생 2명과 부모님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고 집에서 저 대신 장남 역할을 해야만 했던 것이 아닌가 싶어서, 더 그렇고요. 그래서 결국 지금의 일상은, 아마 그런 부채감에서 발로된 가벼운 제안에서부터 시작된 게 아닐까 싶습니다. 계기는 단순했습니다. 부모님과 남동생이 꼬박꼬박 모아오던 돈이 모여서, 남동생이 창업을 준비하겠다고 말했고, 문제는 나름 스타트업과 여러 회사에서 일해온 제가 듣기엔 말도 안 되는 비즈니스였다는 것 정도였을까요?
하지만 과연 여기에 제가 관여할 권리가 과연 있나 싶은 마음에, 하다못해 꽤 큰 스타트업을 만들어서 엑싯까지 한 회사의 대표님을 만나게 해주면 어떨까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광화문의 쉑쉑버거에서 동생을 만난 대표님은 꿈과 미션, 젊음과 도전, 그리고 성공과 실패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동생은, 태어나서 처음 만난 ‘비저너리’인 대표님의 말에 홀라당 마음을 뺏겨버렸고요.
“누나, 나 서울에 올라와서 대표님 옆에서 사업을 준비해보고 싶어.”
아무리 제가 그동안 동생들에게 무관심하고 나쁜 누나로 살아오긴 했다지만... 남동생은 180에 100키로가 넘는 거구라서 정말 조금도 귀엽지는 않았지만... 정말로 무슨 일이 있어도 동생이랑 살기는 싫었지만... 하아... 진짜 싫은데... 동생이 태어나서 제게 처음으로 요청하는 일을 도와주지 않을 수 없더라고요... 결국 저는 동생과 함께 살 수 있는 집을 구해서, 대표님이 동생에게 제안한 100일간 아침마다 달리며 사업제안서를 쓰는 무지막지한 일정에 동행을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결정하기 전에도, 결정하는 순간에도, 결정한 후에도 정말로 이게 맞나 싶기는 했지만... 후후...😇 아무튼, 결정을 했으니 11월부터 지금까지 내내 동생과 함께 여의도에서 아침마다 달렸고, 동생이 쓴 제안서를 가열차게 깠고, 매일매일 동생과 함께 살았고, 살고 있고, 살 예정입니다. 앞으로 심하게 싸울 수도 있고, 못 하겠다고 때려치고 도망갈 수도 있고, 동생이 저를 원망하게 될 수도 있고,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될 지 사실 조금도 예상하지 못하겠지만요, 그럼에도 지금은 괜찮은 것 같습니다. 네, 일단은 그걸로 충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