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집을 나와 기숙사에 살기 시작하면서, 약 15년 동안 참 다양한 집에도 살아보았던 것 같아요. 친구네 집에서 얹혀 살아본 적도 있고, 창문이 없어서 낮인지 밤인지 구분이 안 되던 고시원에서 살아본 적도 있고, 바퀴벌레가 나오는 반지하, 너무 건조해서 숨이 턱턱 막히던 오래된 기숙사, 처음 계약할 때 이후론 인사를 받아주지 않던 주인 아줌마가 운영하던 오래된 하숙집, 바다가 바로 보이던 제주에서의 집까지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나에게 꼭 맞는 집의 조건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물건을 잘 잃어버리니까 손에 닿는 곳에 필요한 물건이 있을 정도로 아담했으면 좋겠어. 넓은 공간은 별로 필요가 없는 게, 내가 정리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가면 어지러워져. 공간 정리를 잘 못하니까 물건은 정말 필요한 것만 가능한 적게 유지해야 하는구나. 좋아하고 아끼는 물건들을 두고 그것들이 한 눈에 들어올 정도의 공간이면 충분해. 그래도 최소한 냉장고에서 나는 소음이 들리지 않게 부엌과 침실이 구분된 1.5룸이면 좋겠어. 하지만 방이 2개면 관리가 잘 안 되니까 투룸까지는 필요 없어. 요리는 잘 하지 않으니까 작은 미니 냉장고만 있으면 되고, 세탁기도 클 필요는 없지만 건조기는 꼭 있었으면 좋겠어. 다른 건 몰라도 책상, 그리고 침대가 아닌 소파는 필요하지. 편하게 앉아서 생각도 하고, 책을 볼 수 있지만 눕지는 않을 공간이 필요하니까. 약간 아담하지만 운동을 할 수 있는 정도의 여유 공간은 있었으면 좋겠어.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비어있는 벽과 햇살이 들어오는 창문은 꼭 필요해🌇
조건이제법까다롭지요? 그래도제주에서올라오며구한저의작은방은제가생각한조건에거의들어맞았답니다. 을지로에위치한작은 5.9평짜리공간에제가생각한모든것을구현할수있었거든요. 왜, 내가 사는 방이 나만의 우주🪐라는말이있잖아요. 저는그말을믿거든요. 최소한일을마치고돌아왔을때제가가장편안하게머무를수있는공간이제방이었으면했고, 작은공간일지라도구석구석제손길과취향이가득담겨이야깃거리가많은방이었으면했어요.
그래서 좋아하는 것들을 모두 가져다가, 매일매일 손이 닿는 가까운 곳에 잘 두고 뿌듯해하는 시간을 가지곤 했답니다. 지금은 아쉽게도 이 방을 떠나 다른 곳에 살고 있지만 그럼에도 을지로의 제 작은 우주에서 보냈던 시간들만큼은 제게 확실히 남았고요. 이렇게 편지로도 쓰고 있으니, 어쩌면 제 기억 속에는 평생 남게 될 거라고 믿고 있어요📝
요가를 할 수 있는 약간의 공간, 간직하고 싶은 모빌과 문구를 둘 수 있는 비어있는 벽, 제주도에서 가장 좋아하던 카페에서 가져온 오래된 빈티지 조명, 태국에서 첫 눈에 반해 사왔던 싱잉볼, 우연히 을지로 가구상가 앞을 지나치다가 오천원에 주워온 스툴까지 제가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 찬 저만의 작은 우주🪐
그리고 우연히 좋은 기회로, 제가 을지로에서 보냈던 사소한 시간들을 기록한 아주 작은 전시가 홍대 근처에서 열리게 되었답니다. <기억을 위한 기록>이라는 전시인데요, 돌종이로 만들어진 기록노트를 제작하는 "리바인더"라는 브랜드와 크리에이터들을 위한 공유주거/오피스브랜드 "로컬스티치"에서 진행하는 단체전에 자그맣게 참여하게 되었으니, 근처에 오실 일이 있으시다면 가볍게 들러주세요. 사실 제 기록은 대단할 게 없지만 다른 참여 작가님들의 재미있는 기록과 낙서, 글들이 기다리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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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위한 기록 - 크리에이터 8인의 기록
•로컬스티치 크리에이터타운 서교, 지하 1층(월드컵북로 5길 41)
•2023.12.09(토) ~ 12.30(목) 상설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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