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단 한 번도 을지로에 살게 될 거라고는 상상해 본 적이 없습니다. ‘힙지로’로 유명할 때 종종 놀러가 본 경험으로, 이 동네가 절대로 저의 취향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밤에는 술에 취한 사람들이 많아지고, 거리는 복잡한데다, 차와 오토바이가 아주 많은 시끄러운 동네라고만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제주에서 서울로 이사하며 빠르게 집을 구해야 했던 상황이 찾아오고 말았죠. 결국 직장과 가깝다는 최고의 장점이, 을지로에 산다는 선택을 내리게 만들었습니다. 물론 살기로 결정을 하고 나서도 과연 내가 여기에 애정을 느낄 수 있을까, 생각했죠. 하지만 원래 정통 로맨스 서사는 혐관(*싫어하지만 어쩔 수 없이 엮이는 사이)에서부터 시작한다고 하잖아요, 제 편견이 애정으로 바뀌는 순간은 정말로 금방 찾아왔습니다💘
알고 보니, 을지로라는 동네가 아주 아주 재미있는 곳이었던 거예요. 첫 깨달음은 출근하기 위해 집 앞 사거리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는 순간 찾아왔습니다. 저는 길거리 여기저기를 살펴보는 버릇이 있는데, 이 사거리에는 제 시선을 잡아 끄는 신기한 일이 정말 많이 일어나는 곳이더라고요. 아주 비싼 고급 세단부터 거대한 물류 트럭, 근처 인쇄소의 다마스, 뒷자석을 개조해 종이를 가득 실은 오토바이, 그리고 손으로 직접 끄는 리어카들이 섞여있는 도로는 그야말로 단 한번도 서울에서 볼 수 있을 거라고 상상해본 적 없는 광경이었죠. 이야, 이거 베트남보다 더 신기한데?🙄
그리고 도로 옆 인도 역시 상황은 비슷했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코리빙 하우스에 사는 힙하고 멋진 스타일을 뽐내는 젊은이들과, 시장과 인쇄소에서 일하시는 아저씨들, 근처 대기업 본사로 출근하는 회사원들, 그리고 알록달록한 머리색을 가진 외국인 관광객들이 모두 같은 길을 공유하면서도, 놀랍게도 전혀 섞이지 않고 각자 자신만의 길을 가고 있더라고요. 이런 사람들이 같은 곳에 모이기도 쉽지 않은데, 또 전혀 교류 없이 길만 공유하며 서로 소 닭 보듯 하는 그 상황이 왠지 재미있어서 을지로라는 동네가 점점 흥미로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을지로에서 따릉이를 타고 청계천을 따라 10분만 달리면 청계천 입구에 도착합니다. 거기서 5분만 걸으면 회사에 도착하고, 퇴근길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지금은 추워져서 따릉이를 타기 조금 어려울 수 있지만, 제가 이사했던 9월과 을지로에 살았던 10월은 자전거를 타고 서울의 가을을 흠뻑 누릴 수 있는 참 행복한 출퇴근길이었죠. 제주도를 떠나 맞이한 서울생활 참 좋구나! 하고 생각할 정도로요. 가끔 시간이 여유있거나 날씨가 많이 좋은 날에는 걸어서 집에 가기도 했어요. 청계천을 따라 가득한 버드나무와 단풍나무, 둥둥 떠있는 청둥오리와 왜가리, 데이트하는 커플들, 즐겁게 웃고 있는 관광객들 사이를 걷고 있으면 저도 기분이 덩달아 좋아지더라고요. 이렇게 글로만 써도, 어떤 분위기일지 대충 느껴지지 않나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가을의 냄새가 폴폴 풍기는 풍경을 흠뻑 느낄 수 있는 그런 장면들. 을지로에는 그런 곳들이 많더라고요. 아침마다 올랐던 남산의 풍경이나, 아직도 성업 중인 재래시장들, 고소한 향기로 유혹하는 생선구이 백반집들. 별 거 아니지만 그런 사소한 것들을 결국 사랑하게 되었던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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