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n't Panic! Just a Letter from Universe
찢어진 백과사전을 채우기 위해 탐험을 떠난 이동조사원이 보내는 탐험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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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 하나에 빠지고 나면, 다른 것이 보이지 않는 경험을 다들 해보셨을 거예요. 저에게도 그런 일이 종종 발생하는 편입니다. 뭔가에 ‘꽂히고’ 나면 그때부터 한동안 인생이 그것만을 위해 재편되곤 합니다. 학생 때에는 예체능 전공도 아닌데 갑자기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입시미술반에서 홀로 꿋꿋이 취미그림을 배우기도 하고, 대학생 때에는 게임에 빠져서 하루에 열여섯 시간씩 게임을 하기도 하고, 졸업할 때 즈음엔 전공과 전혀 관련 없는 캘리그라피에 빠져서 전시도 열고, 직접 가르치는 강사까지 해보았던 것 같아요. 졸업하고 일하면서는 갑자기 여행과 사진이 좋아져서, 퇴사한 뒤 사진 스튜디오에서 일을 배우고 여행작가가 되겠다고 에디터로 지원해서 일해보기도 하고요(아직도 친구들과 오랜만에 연락이 닿으면 종종 “이번 직업은 뭐니?”라는 질문을 받기도 합니다). 아주 사소하게는 음식에 꽃히면 한 달 내내 삼시세끼 같은 메뉴만 먹어도 질리지 않고, 좋아하는 공간이 생기면 매일같이 가고, 책이 마음에 들면 문장을 외울 정도로 읽고, 재미있게 본 영화는 영화관에서 열 번을 보기도 합니다🤔
문제가 있다면, 이렇게 한 가지에 몰두해 있는 상태에서는 (어쩌면 당연히) 다른 것에 소홀해진다는 것입니다. 이쯤 되면 다음 말이 대충 예상이 가실 수도 있겠네요. 호호… 어느 새 탐험일지를 발행하지 않은지 벌써 두 달이 넘어, 세 달이 가까워지고 있는데요. 이에 대한 약 550자 분량의 긴 변명이라고나 할까요... 아주 정확히는, 총 11번의 탐험일지를 미루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슬슬 무엇에 꽃혀있었는지를 말할 차례겠지요.
이 이야기는 21년 말에 방문했던 글쓰기 전용 공간에서의 체험으로부터 시작되는 이야기입니다. 한창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의식의 흐름을 자유롭게 써내려가는 모닝페이지를 할 때인데요, 마침 모닝페이지를 쓰기 위한 전용 공간을 제공하는 체험이 있다고 해서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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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 테이블에 혼자 앉아 글쓰기를 위해 마련된 필기구를 자유롭게 쓰는 경험은 처음 해보는 거였는데, 정말 좋았습니다. 카페나 공유오피스는 많지만 글쓰기만을 위해 마련된 공간은 잘 없잖아요. 고요한 음악이 흐르고, 습도와 조명이 쾌적하고, 공간에 있는 모든 것이 글을 쓰는 사람을 위해 준비된 것이니만큼 공간 경험이 아주 만족스럽더라고요. 아쉽게도 팝업으로 열린 체험과 공간이었던지라 한 번 밖에 가보지는 못했지만요.
다만 이 경험은 제 안에 어떤 씨앗으로 남은 것 같아요. 이런 공간도 있을 수 있고, 분명히 매력이 있으며, 나같은 사람들은 이런 공간을 좋아할 수 밖에 없겠구나, 하는 마음이요. 그리고 이 씨앗이 본격적으로 발아한 것은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작년의 늦은 여름입니다. 우연히 친구의 추천을 받아 연희동에 위치한 “프로토콜”이라는 카페에 찾아갔고, 그 공간에 한눈에 반해버리고 만 것입니다. 이 날의 일기를 보면 “사랑에 빠졌다”고 표현되어 있을 정도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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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경험한 프로토콜은 글을 쓰거나 책을 읽거나 작업을 하거나 혹은 그 모든 것을 하기에 좋은 테이블들이 가득했고, 흐르는 음악과 분위기가 매력적이었고, 별다른 장식이 없어도 충분한 시크한 블랙톤의 인테리어가 아주 완벽한 ’제 취향‘이었습니다. 거기에 이전에는 몰랐던 공간의 매력까지 알게 해주기도 했지요. 이전엔 혼자만의 공간이어야 몰입하기 좋지 않나? 라고 생각했었거든요. 그런데 프로토콜이 가진 또 하나의 매력은, 가깝지는 않지만 같은 공간 안에서 모르는 타인들이 각자 테이블에서 글을 쓰거나, 책을 읽거나, 뭔가 멋진 것들을 하면서 각자의 일에 몰입하고 있다는 거였어요. 그런 곳에 앉아있으니 자연스럽게 저도 그 분위기에 빠져들게 되더라고요.
그 이후부터 서울에 갈때마다 자연스럽게 가장 먼저 프로토콜로 향하는 동선을 짰습니다. 탐험일지에서도 소개하고 싶어서 여러번 글을 쓰려고 시도했지만, 당시에는 어떤 언어로 표현해야할지 몰라 막혀서 쓰지를 못했습니다. 프로토콜은 카페이고, 심지어 로스터리를 표방하는 곳이며, 물론 커피가 아주 맛있는 곳이지만, 저는 ‘커피와 원두를 판매하는’ 카페로서의 프로토콜을 사랑하는 건 아닌 것 같다는 애매모호한 느낌이 있었거든요.
이제 와서 다시 생각해보면, 연희동 프로토콜이라는 공간은 제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영감을 주는 작업실’이라는 공간을 구현해서 슬쩍 보여준 것 같았아요. 물론 이 공간을 제가 구현하고 모델링한 것이 아니니, 카페라는 특성상 생겨날 수 밖에 없는 것들에 자꾸만 아쉬움이 느껴지더라고요. 어쩔 수 없지요, 프로토콜은 제 작업실이 아닌 불특정 다수가 이용하는 카페라는 상업 공간인 걸요. 그렇게 생겨난 씨앗들과 아쉬움이 합쳐져서,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공간에 대한 구체적인 그림이 조금씩 그려지는 게 느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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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도 읽고 글도 쓰고 뭔가를 만들어내는 일들을 하고 싶은데, 그런 곳에 최적화된 장소가 있었으면 좋겠다. 거기엔 커다란 책상이 있으면 좋겠고, 의자는 푹신하지는 않아도 오래 앉아있기 편했으면 좋겠고, 클래식은 아니지만 적당히 집중할 수 있는 음악이 흘렀으면 좋겠고, 집중하기 좋게 살짝 어두운 느낌이면 좋겠어. 특별한 인테리어나 오브제는 필요없고 몰입하기 좋도록 장식이 최소화된 깔끔한 곳, 그리고 너무 조용하지도 않고 너무 시끄럽지도 않은 곳. 현실과 조금 동떨어진 것 같지만, 그럼에도 무언가에 집중하고 있는 타인이 근처에 있어서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 곳.
어쩌면, 내가 만들어볼 수도 있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지요. 물론, 돈도 땅도 건물도 없는 신세지만, 어쩌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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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아무 것도 없는 상태로, 일단은 무작정 생각들을 써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메모를 확인해보면, 가장 첫 기록이 2022년 9월 7일입니다. 가장 첫 줄은 이렇습니다. “보증금과 월세가 필요하다.” 아무래도… 중요하니까요😇
그리고는 열심히 공간의 이름과 컨셉은 무엇이 좋을지, 어떤 사람들이 오면 좋을지, 어떻게 운영방식을 만들면 좋을지, 공간을 구한다면 어디가 좋을지, 사람들이 와서 어떤 체험을 하고 가도록 할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월세는 얼마인지, 무작정 생각나는 것들을 한 달 정도 혼자 꾸준히 써내려 갔습니다. 그렇게 수십페이지가 넘는 메모들이 쌓이고, 머리 속으로 공간이 점점 구체화되니 자연스럽게 공간의 이름도 정할 수 있었습니다.
바로 <리드앤라이트>라는 이름으로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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