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부터 반장이나 학생회, 혹은 운영진처럼 대표성과 책임을 가지고 여러 액션을 취해야만 하는 자리가 있다면, 최선을 다해 피하며 살아왔습니다. 해야하는 의무와 할 일이 많아지는 것도 싫고, 싫다고 해서 쉽게 그만두는 것도 어려워지며, 무엇보다 내가 가진 호불호와 관계 없이 모든 사람들을 공평하게 대해야한다는 것이 힘들 것 같았거든요. 특히 취미모임이나 커뮤니티에서라면 더욱요. 내가 좋자고 활동하는 모임인데, 왜 그런 것까지 감수해야 하지! 하고 생각했어요.
다행히 작년까지는 이것에 대해 고민할 일조차 없었지만, 2021년 이맘때 즈음 누군가의 제안이 저를 갈등에 빠지게 했습니다. 첫 계기는 ‘스타트업 여성들의 일과 삶(스여일삶)’이라는 커뮤니티의 대표님이 제주에서 진행한 강의에 참여하면서였어요. 제주에서도 일에 대한 고민을 나눌 수 있는 분들이 생기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참여한 자리였는데요, 거기서 만난 분들과 강의가 끝나고도 몇 번씩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거든요. 거기서도 자꾸만 만나자고 약속을 잡던 롤라라는 분에게 같이 제주에서 일에 대해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여성 커뮤니티를 만들어보자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저는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내가 과연 구성원들 중에 싫어하는 사람이생겼을 때 티내지 않을 수 있을까?’ 라는 질문에 쉽게 대답할 수 없었거든요. 모임이나 커뮤니티를 운영하는 사람이라면 가져야할 가장 기본적인 덕목이 ‘공평함’이라고 생각해왔는데, 제가 그런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고민이 됐습니다. 회사 일도 아닌데, 내가 싫은 사람이 생겨도 티를 못 내면서 수고를 들여가며 커뮤니티를 만들어야 하나? 그냥 일반회원으로 열심히 참여할 자신은 있는데… 하고요🤔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참 다행스럽게도, 고민 끝에 ‘해보고 별로면 그만두지 뭐’하는 적당한 마음으로 제안을 받아들인 이후, 작년 12월에 시작한 ‘제주우먼파워’ 커뮤니티는 이제 1년을 맞이해서 지난 토요일에는 무려 1주년 파티를 열기도 했답니다. 지금 제우파에는 80명이 넘는 분들이 가입하셨고, 6명의 운영진이 활동하며 매달 공식 오프라인 모임을 여는 제법 큰 커뮤니티로 성장했어요. 사실 얼마나 커지겠어~! 하고 시작한 커뮤니티가 생각보다 커져서 놀랍기도 하고, 제주 내에서 새롭게 알게 된 분들이 제우파를 알고 있다는 말을 하실 때마다 왠지 뿌듯하기도 하고, 제우파 내에서 만나는 분들과 여러 일을 해낼 때마다 보람도 느끼고 있습니다.
1년간 제우파를 만들고 운영해오면서 참 많은 것을 느꼈지만, 개인적으로 얻은 가장 큰 깨달음은 “나는 내 생각보다 공평할 수 있는 사람이었고, 책임을 지는 것도 의외로 괜찮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잘 못 할거라고 생각해서 항상 피해왔던 것들이 저에게 주는 선물이랄까요. 정말 놀라웠던 것은 제가 가장 고민했던 모임 내빌런이 단 한 명도 없었다는 것이고(물론 앞으로 언제든 생겨날 수 있다는 생각은 버리지 않았습니다, 호호), 또 적당히 하다 그만둘 줄 알았던 제가 1년 동안 꾸준히 운영진으로 제우파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저는 항상 제가 꾸준하지 못하고, 성실하지 못한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여기며 살아왔습니다. 취미나 취향이늘 빠르게 바뀌고, 오래 다닌 회사도 없고, 꾸준히 오랜 기간 해온 일이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새로운 취미가 생기면 반짝 그 취미에 몰입하며 사람들을 알게 되었다가, 흥미가 식으면 취미를 그만두고 알던 사람들도 보지 않게 되고요, 공부나 일도 조금 노력하다가 생각만큼 잘 되지 않으면 금세 그만두고, 어떤 모임이나 친구사이에서 갈등이 생기면 그 갈등을 감당하고 좋은 방향으로 개선하기보다는 그만두고 도망치는 선택을 해온 제게, 제우파는 어떤 분기점이 되어준 것 같아요.